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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

중국 문화의 도입 지역과 확장된 불교 세력 7세기 힌두교의 거부 이후 동남아시아, 특히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불교의 확산에 대해 알아보자. 수마트라 섬에 세워진 스리위자야 왕국은 인도를 우회해 중국으로 전파된 마하야나 불교를 믿었다. 그 왕국은 중국, 동남아시아, 그리고 인도를 연결하는 해상 무역의 환승 중심지가 되었다. 중국 문화의 도입 지역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4~5세기 이후 힌두교가 보급되었다. 두 나라는 캄보디아, 남베트남처럼 힌두교 세력이 우세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7세기, 수마트라섬에서 건국된 스리위자야 왕국이 불교를 신봉하면서 힌두교가 배척되었다. 스리위자야 왕국은 믈라카 해협을 지배하며 중국과 동남아시아, 인도를 잇는 해상교역의 중계 거점으로 발전했다. ‘스리위자야’란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스리는 ‘빛나다’, 비자야.. 더보기
조로아스터교의 기독교에 미친 영향과 변형 조로아스터교는 유대교뿐만 아니라 기독교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기독교의 기본적 교리의 근간이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조로아스터가 죽은 뒤 그 종교적 기반은 흔들렸고 마침내 급속한 몰락의 길을 가게 된다. 조로아스터교의 기독교에 미친 영향 조로아스터교의 ‘선과 악, 천사와 악마, 천국과 지옥’ 등 이분법 교리는 유대교보다는 이후의 ‘나사렛 사람들’, 곧 서기 90년 유대교에서 쫓겨난 초기기독교 교리에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다. 당시 초기기독교인들은 세상이 곧 망할 것이라는 말세론에 무게를 두고 있어 말세 이후의 세상에 관심이 많았다. 천국과 지옥 등의 내세관이 강하게 유입된 이유의 하나였다. 조로아스터교는 아후라 마즈다에 대한 ‘믿음’이 신앙의 기본이었다. .. 더보기
조로아스터교의 유대교에 미친 영향과 바리새파 조로아스터교가 유대교에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조로아스터교의 악마의 개념, 천당과 지옥, 심판이 유대교에 스며들었다. 이는 자연스러운 역사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사두개파는 조로아스터 교리를 거부했으나 바리새파는 수용하였다. 조로아스터교의 유대교에 미친 영향 조로아스터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등 다른 종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기원전 6세기 바빌론으로 끌려온 유대인 포로들은 당시 바빌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국교인 조로아스터교를 접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조로아스터교의 ‘유일신, 선과 악, 천사와 사탄, 최후의 심판, 구세주, 부활, 낙원과 지옥, 종말’ 등의 개념은 유대인들이 그간 몰랐거나 희미하게 느꼈던 것들을 명확하게 해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대교의 신관은 단일신이.. 더보기
조로아스터교의 기본 교리와 창조 설화 조로아스터교의 기본 교리는 선악의 투쟁을 다루는 이원론에 있다. 무엇보다 조로아스터교의 창조 설화를 보게 되면, 구약 성경의 창조 설화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종교의 신화적 요소와 그 출발점은 어떤 면에서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로아스터교의 기본 교리 조로아스터는 세상에는 오직 한 분의 참된 신이 있는데, 그분이 바로 아후라 마즈다라고 선포했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믿는 다른 신은 모두 거짓 신이라며 아후라 마즈다를 제외한 다른 신에 대한 제의를 거부했다. 그 무렵 다신교 사회에서 이런 파격적인 선언은 실로 놀라운 일이자 세계종교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발견되는 유일신관의 근원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로아스.. 더보기
조로아스터교의 탄생과 포교 활동 조로아스터교의 탄생 시기는 그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하나의 종교로서 조로아스터교의 탄생 시기보다 중요한 것은 조로아스터교의 포교 활동과 그 종교가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중점을 두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조로아스터교의 탄생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아후라 마즈다가 아닌 태양의 신 미트라 또는 데바 신을 숭배했다. 하지만 조로아스터 등장 이후 유일신 신앙이 정립됐다. 조로아스터교의 창건 시기에 대해서는 기원전 1800년에서 기원전 640년경까지 의견이 다양하다. 심지어 기원전 7000년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란의 조로아스터교 교단은 기원전 1768년에 창시되었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는 기원전 650년경 출생한 사람으로 알려졌으나 유명한 비교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그의 .. 더보기
브라만교 우파니샤드와 범아일여 사상 브라만교 우파니샤드는 진리 탐구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파니샤드의 등장은 제사 중심의 브라만교를 철학종교로 발전시키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의 근간을 이루었다. 브라만교 우파니샤드 기원전 1000년 이후 후기 베다시대로 갈수록 목축 비중보다 농업 비중이 커져갔다. 철제 농기구와 우경이 도입되면서 농업 생산량은 획기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잉여생산물에 따른 계급분화와 상업발달을 가져와 도시화를 가속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영토를 많이 확보하며 실력을 기른 크샤트리아와 상권을 장악한 바이샤 계급은 브라만의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브라만이 주도하는 제례의식 만능주의는 강한 반발에 부딪혀 우파니샤드가 정립되는 등 새로운 경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파니샤드는 자아와 우주의 본질에 관한 논의.. 더보기
브라만교 제사와 경전, 인드라와 브라흐마나 브라만교의 제사 문화를 기반으로 아리아인들의 카스트 제도에 대한 사상은 확고해졌다. 그리고 브라만교의 경전 '베다'는 그들의 믿음을 나타내는 징표였다. 또한 번개와 전쟁의 신 '인드라'와 '브라흐마나' 제사중심주의 사상이 카스트 제도를 보다 구체화시켰다. 브라만교 제사 브라만교 아리아인들이 가진 제사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인간의 힘을 뛰어넘는 자연현상에 두려움을 가졌다. 천둥과 번개와 폭풍은 신들이 노한 것으로 이해하고 특히 무서워했다. 한편 그들은 불과 소마주酒의 위력을 찬양했다. 그들은 제례의식 때 항상 불을 쳐다보며 의례를 올렸다. 불은 신성한 브라만의 정신과 품성의 표징이었다. 그리고 산 동물을 신에게 희생공물로 바치는 베다 의례에서는 신들에게 동물희생제물과 수확물을 바쳤는데 그 가.. 더보기
아리안 브라만교와 인도 정복, 카스트 제도 아리안 계통의 브라만교는 인도 토착의 민간 신앙과 융합하고, 불교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300년경부터 종파의 형태를 정비하여 현대 인도인의 신앙 형태를 이루고 있다. 브라만교는 아리안 족의 인도 정복으로 정착된 카스트 제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아리안 브라만교 이란고원 동부 박트리아 초원에 살던 아리안들은 기후가 점점 건조해지며 초원이 줄어들어 이웃 부족 간에 목초지 경쟁이 격화되자 살길을 찾아 딴살림을 낼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힌두쿠시 산맥은 최고 높이가 7700미터에 달하고 길이가 무려 12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보통은 이런 거대한 산맥이 가로막혀 있으면 방향을 바꾸어 반대방향으로 살길을 찾아 개척하는 법인데 아리안 기마민족은 달랐다. 그들은 포기하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