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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

조로아스터교의 탄생과 포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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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교의 탄생 시기는 그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하나의 종교로서 조로아스터교의 탄생 시기보다 중요한 것은 조로아스터교의 포교 활동과 그 종교가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중점을 두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조로아스터교의 탄생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아후라 마즈다가 아닌 태양의 신 미트라 또는 데바 신을 숭배했다. 하지만 조로아스터 등장 이후 유일신 신앙이 정립됐다. 조로아스터교의 창건 시기에 대해서는 기원전 1800년에서 기원전 640년경까지 의견이 다양하다. 심지어 기원전 7000년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란의 조로아스터교 교단은 기원전 1768년에 창시되었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는 기원전 650년경 출생한 사람으로 알려졌으나 유명한 비교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그의 탄생을 기원전 1200년경으로 보고 있다. 조로아스터가 바로 니체의 저서에 등장하는 ‘자라투스트라’이다. 자라투스트라는 ‘낙타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당시는 낙타를 가진 사람이 존경받는 유목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사회는 계급사회였다. 족장과 사제계급, 전사계급, 농부와 목축업자 계급 등 3계급으로 구분되었다. 조로아스터는 사제계급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사제교육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고대 페르시아 사제들은 7살 때 집을 떠나 스승에게 맡겨져 사제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제 입문과정을 마친 조로아스터는 이후 종교학교에 들어가 신학교육을 받았다. 그는 교육받으면서 다신교에 대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선생을 찾아다니며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점차 자신만의 종교관을 발전시켰다. 일반적으로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15세부터 성인으로 간주하는데, 그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5년간 종교수행을 계속했다. 20살이 된 그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종교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친구와 가족도 멀리했다. 조로아스터는 20세에 부모와 아내를 떠나 빈민가 사람들에게 농사법을 가르쳤다. 그는 30세 되던 해에 진리를 받게 된다. 조로아스터는 초원의 질서가 약탈과 폭력으로 아수라장이 되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했다. 봄 축제를 하던 어느 날 아침 조로아스터는 동틀 무렵 그날 희생제에 쓸 물을 길러 강으로 갔다. 그는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강으로 걸어 들어가 물속에 몸을 담갔다. 신성한 물은 그를 태고의 순수함으로 되돌려놓았다. 그가 물 밖으로 나왔을 때 강둑에 빛나는 존재가 서 있었다. 그 존재는 자신의 이름이 ‘보후 마나(선한 목적)’라고 했다. 그는 여섯 천사장 중 하나로, 조로아스터를 데리고 아후라 가운데 가장 위대한 마즈다 앞으로 데려갔다. 마즈다는 지혜와 정의의 신으로 광채를 발하는 일곱 신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마즈다는 조로아스터에게 그의 백성을 모아 폭압에 대항하는 성정을 펼치라고 말했다.

조로아스터교의 포교 활동

조로아스터는 아후라 마즈다가 단순히 위대한 신이 아니라 ‘최고의 신’ 임을 확신했다. 아후라 마즈다는 ‘지혜의 주님’이라는 뜻이다. 조로아스터는 영적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아후라 마즈다로부터 포교자의 사명을 받은 그는 이렇게 외쳤다. “이 일을 위해 당신은 저를 태초부터 당신의 창조물에서 구별하여 선택하셨나이다.”(야스나 44장 11절) “저의 온 마음을 당신의 신성한 영 보후마나와 연합하기로 결심합니다. 저는 당신을 향한 우리의 행동에 복을 주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온 힘을 다해 당신의 가르침, 정의와 진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칠 것입니다.”(야스나 28장 4절) 그 뒤 8년 동안 나머지 다섯 천사장들이 하나씩 그에게 나타나 진리를 전해주었다. 조로아스터는 40세 때 이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실망한 그에게 유혹의 시련이 닥쳤다. 전승에 의하면 조로아스터가 광야로 가서 기도할 때 악령 앙그라 마이뉴가 나타나 아후라 마즈다를 숭배하지 않겠다고 하면 세상권세를 다 주겠다고 유혹하지만 조로아스터는 이를 거부한다. 이후 조로아스터는 그의 종족에게 거부당한 뒤 다른 종족들에게 선교하러 떠날 결심을 했다. 그때 마침 그의 사촌 중 하나가 그를 믿고 제자가 되어, 둘이 박트리아 비스타스파왕에게 진리를 전하러 갔다. 2년간 투옥되기도 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왕과 온 조정이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비스타스파왕은 여러 신을 믿는 다신교 사회보다 조로아스터교라는 새로운 유일신 종교가 나라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보았다. 왕은 소 1만 2천 마리의 가죽을 무두질해 햇볕에 말린 후 그 위에 경전 아베스타를 쓰도록 명했다. 그 뒤 조로아스터교는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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