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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

브라만교 우파니샤드와 범아일여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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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니샤드

 

브라만교 우파니샤드는 진리 탐구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파니샤드의 등장은 제사 중심의 브라만교를 철학종교로 발전시키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의 근간을 이루었다. 

브라만교 우파니샤드

기원전 1000년 이후 후기 베다시대로 갈수록 목축 비중보다 농업 비중이 커져갔다. 철제 농기구와 우경이 도입되면서 농업 생산량은 획기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잉여생산물에 따른 계급분화와 상업발달을 가져와 도시화를 가속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영토를 많이 확보하며 실력을 기른 크샤트리아와 상권을 장악한 바이샤 계급은 브라만의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브라만이 주도하는 제례의식 만능주의는 강한 반발에 부딪혀 우파니샤드가 정립되는 등 새로운 경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파니샤드는 자아와 우주의 본질에 관한 논의를 심화시켰다. 이러한 추세는 제사 위주의 브라만교가 고차원적인 철학종교로 발전하게 된 의미 있는 변화였다. 브라흐마나 경전의 종교이념이 지나치게 형식적인 제의주의로 변해가자 이에 반대하는 일단의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현실적 가치가 아닌 탈속적 가치를 탐구했다. 이로써 등장한 것이 ‘숲의 시대’이다. 숲에 들어가 명상하며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런 풍조로 남자아이들은 아예 어릴 때부터 다르마(법)를 배우기 위해 숲으로 들어갔다. 브라만은 8세, 크샤트리아는 9세, 바이샤는 12세가 되면 숲 속으로 들어가 스승과 6년간 생활을 같이하며 배워야 했다. 숲의 시대 기간은 길지 않았고 곧바로 우파니샤드 시대가 열렸다. 브라흐마나 시대가 의식에 치중한 시대였다면 우파니샤드 시대는 철학적인 사유의 시기였다. 이들로부터 세계 최초의 스승과 제자의 ‘대화체 경전’ 우파니샤드가 탄생했다.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결론이라는 뜻에서 ‘베단타’라고도 불린다. 우파니샤드 시대가 열리면서 다양한 파의 다양한 철학적 사유가 생겨나고 브라만교는 이 다양성을 인정했다. 우파니샤드의 문헌은 기원전 8세기부터 약 500년에 걸쳐 쓰인 2백 권에 달하는 사색서로, 그 저자나 사상의 전개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 일관된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이전 베다의 이원론적 세계관과는 달리 모든 존재의 본질을 하나로 보려는 일원론적 세계관을 제시한다는 데 있었다. 리그베다와 브라흐마나 시대에는 인간의 욕망이 충족되는 삶을 이상으로 보았다면, 우파니샤드 이후에는 오히려 욕망으로부터의 해탈을 삶의 이상으로 추구했다. 인도종교사에서 획기적인 사상적 전환이었다.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

우파니샤드가 탄생하면서 자유사상가들은 우주의 근원적 실재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며 그 상호관계를 밝히는 데 주력했다. 그들은 우주가 전체적으로 어떤 통일성과 조화를 가지고 운행되며,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존재가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브라흐마나에서는 ‘제사’가 중요한 데 반해, 우파니샤드에서는 ‘깨달음’이 중요했다. 이 시기에 윤회(Samsara), 업(Karma), 법(Dharma), 브라만(우주의 본체), 아트만(인간의 영혼)과 같은 주요 개념이 제시됐다. 본래 유목민족인 아리아인의 종교관에 ‘내세’ 개념은 있어도 ‘윤회’ 개념은 없었는데, 거듭되는 계절의 변화에 맞춰 사는 농경을 하면서 윤회를 수긍했다. 우파니샤드는 공부의 대상을 자연이라는 외부세계에서 인간 내면의 정신과 영혼으로 바꾸었다. 곧 나의 바깥에 있는 존재로서의 신을 바라보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자아自我와 우주와 신은 하나라는 사상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후 우주의 근본원리 브라만(Brahman)과 개인의 자아 아트만(atman)이 동일하다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이 출현해 브라만교의 중심사상이 된다. 브라만은 원래 만유에 내재한 신성한 신비력이므로, 우주의 근본원리인 범(梵)과 영원한 참 존재인 나(我)는 하나라는 뜻이다. 만물에 스며있는 브라만과 나의 내면에 있는 신이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가르침이 핵심이다. 카스트제도 하의 인도에서, 아트만 개념은 신분의 귀천을 초월하여 개인 존재의 고귀함에 대해 일깨운다는 의의가 컸다. 그 무렵 인도인들은 근본적으로 현실세계는 고통이라고 생각했고, 하늘의 뜻을 깨달아 해탈함으로써 윤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인생의 최고목표였다. 우파니샤드 사상에서는 인간이 우주와 자아가 하나라는 섭리를 깨달을 때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우파니샤드의 범아일여 사상은 뒤에 불교를 비롯해 인도에서 발생한 모든 종교의 중심사상으로, 이른바 ‘축의 시대’에 만들어진 동양종교와 동양정신의 기본개념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후의 브라만교는 제사중심의 형식주의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여전히 제사장인 브라만의 역할에 따라 개인과 우주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가르쳤다. 그 무렵 갠지스 강변에 소왕국을 세운 왕들은 브라만과 손잡고 신정일치의 사회를 이루어 자연스럽게 제왕으로 인정받았다. 이는 카스트제도의 계급구조를 더욱 공고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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