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만교의 제사 문화를 기반으로 아리아인들의 카스트 제도에 대한 사상은 확고해졌다. 그리고 브라만교의 경전 '베다'는 그들의 믿음을 나타내는 징표였다. 또한 번개와 전쟁의 신 '인드라'와 '브라흐마나' 제사중심주의 사상이 카스트 제도를 보다 구체화시켰다.
브라만교 제사
브라만교 아리아인들이 가진 제사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인간의 힘을 뛰어넘는 자연현상에 두려움을 가졌다. 천둥과 번개와 폭풍은 신들이 노한 것으로 이해하고 특히 무서워했다. 한편 그들은 불과 소마주酒의 위력을 찬양했다. 그들은 제례의식 때 항상 불을 쳐다보며 의례를 올렸다. 불은 신성한 브라만의 정신과 품성의 표징이었다. 그리고 산 동물을 신에게 희생공물로 바치는 베다 의례에서는 신들에게 동물희생제물과 수확물을 바쳤는데 그 가운데 소마주를 가장 소중하게 여겼다. 이는 소마초草로 만든 술로 강한 흥분을 일으키는 환각작용을 하는데 이를 통해 신을 영접했다. 그래서 그들은 소마주를 신의 술이라 불렀다. 그들은 신의 술이 주는 황홀한 도취감을 신과 교통 하는 신비스러운 영력이라 여겨 소마주 자체도 신격화했다. 그들은 이러한 두려움과 경외감을 토대로 자연신적 우주관을 가지고 모든 현상은 각 신의 의지에 의해 움직인다고 믿었다. 폭풍의 신 '인드라'를 비롯해 대략 76개의 자연신이 있었다. 이들이 제각기 직분을 갖고 인간세계를 관리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 신들은 우주와 자연현상을 마치 사람의 형상으로 그려낸 존재들이다. 베다에서 신에 대한 용어는 '데바 deva'이다. 이 말은 라틴어 데우스 deus, 영어의 디오스 dios와 동일한 어원을 갖는 것으로 '빛나는 존재' 또는 '주는 자'라는 의미이다. 이 신들 사이의 위계질서는 없으나 특정 신을 숭배할 때 그 신을 최고신으로 숭배하며 섬겼다. 이를 종교학자 막스 밀러는 '교체신론'이라 칭했다. 결국 이러한 제사의식은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고대인들의 생존방편 중 하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직면한 역경을 해결하기 위해 특정 신에게 찬양과 제물을 바치고 은총을 빌었다. 그러한 제사의식은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졌는데, 그 모든 것을 독점적으로 관리하는 집단이 사제계급 브라만이었다. 브라만교의 3대 특징이 베다 경전을 신성하게 믿는 것, 동물희생제인 공희를 중시하는 것, 그리고 카스트제도에 대한 믿음이다.
브라만교 경전
베다는 '안다(Know)' 라는 말로 '지식', '지혜'를 의미한다. 당시 '안다'는 것은 자연신들이 다스리는 자연현상의 돌아가는 이치를 안다는 뜻이었다. 이러한 섭리를 알고 있는 브라만들이 당연히 최고 지배층이 되었다. 또 베다는 넓은 의미로는 '기록될 가치가 있는 지식 전체'를, 좁은 의미로는 '성스러운 지식'을 의미한다. 이는 브라만교 교의와 제례규정, 찬가, 기도문뿐 아니라 철학, 문학, 사회생활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 방대한 산스크리트어 문헌으로 분량이 기독교 성경의 6배에 달한다. 학자들은 기원전 수십 세기 전부터 구전되던 내용을 기원전 1500년~1200년 사이에 글로 기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종교문헌을 슈르티와 스므리티로 나눈다. 슈르티는 '들은 것'이라는 뜻으로 신이 직접 말한 문헌이고, 스므르티는 '기억한 것'이라는 의미로 인간이 쓴 문헌이다. 브라만교 전통에서 베다는 성자 리시를 통해 '들은 것'이라는 뜻이다. 당시 베다는 사제계급 브라만의 독점물이었다. 베다의 제례의식은 '찬가, 제문, 예식, 주술'의 순서에 따라 이를 분담하는 4명의 제관에 의해 주관되었다. 따라서 베다 문헌은 리그베다(찬송의 베다), 야주르베다(제문의 베다), 사마베다(예식의 베다), 아타르바베다(주술의 베다) 등 4종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베다의 구분은 제의에 참여하는 네 명의 제관이 지닌 역할인 찬가, 제문, 예식, 주술에 따라 나뉘었다. 리그베다는 신들을 불러들이는 노래, 야주르베다는 제사 진행(법식)과 관계가 있고, 사마베다는 제례 예식 때 부르는 노래, 아타르바베 다는 주술로 재앙을 없애고 행복을 구하는 데 쓰였다. 브라만교는 제사장인 브라만의 역할에 따라 개인과 우주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아리아인은 사제계급 브라만이 베다를 암송하며 기도드리는 제사의식을 신성하게 여겼다. 브라만들은 수천 편이나 되는 시를 노래처럼 달달 외워 후손에게 전했는데, 20년은 훈련해야 다 외울 수 있었다. 브라만이 존경받는 이유였다. 오랫동안 입으로만 전해지다 기원전 1000년 무렵부터 문자로 기록됐다. 주로 신에 대한 찬가와 기도를 수록한 리그베다는 이 시대를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문자 기록이다.
인드라와 브라흐마나
인도인들이 번개와 전쟁의 신 인드라를 좋아하는 데는 그에 대한 신화가 한몫했다. 인드라는 소마 음료를 마시고, 흰 코끼리를 타고 다니며, 무적의 전곤(혹은 번개)으로 적진을 유린하는 전쟁의 신이다. 그는 거대한 코브라 브리트라를 죽여 그 뱀의 똬리 속에 갇혀 있던 물을 해방시켰다. 그 물이 곧장 바다까지 내달렸다고 한다. 그렇게 인드라는 지상의 일곱 강을 다시 흐르게 했고, 그의 승리 덕에 태양과 하늘과 새벽이 살아날 수 있었다. 그 뒤 그는 천상과 지상의 왕으로 추앙받았다. 초기브라만교에서는 인드라가 최고신으로 아리아인들의 수호신이었다. 기원전 10세기부터 8세기경까지 베다에 대한 주석서로서 브라흐마나가 편찬되면서, 브라흐마나시대로 접어든다. 기원전 1000년경부터 아리안 기사계급이 인더스강 유역을 떠나 비옥한 갠지스강 유역으로 진출해 농경중심사회가 되었다. 이때부터 무력으로 원주민을 제압하기보다는 사제계급인 브라만의권위와 주술로 그들을 굴복시켰다. 이로써 브라만이 집전하는 제사의 중요성이 날로 커져갔다. 유목민들이 귀히 여기던 '말 희생제'와 같은 산 제물을 바치는 공희제도 빈번히 열리고, 그 형식 또한 매우 엄격하고 복잡해졌다. 그 무렵 브라만은 제식의 실행과 우주 자연현상 사이에는 밀접한 대응관계가 있어 제사는 불가사의한 영력을 갖는다고 믿었다. 그러자 제사의 의미 역시 변했다. 기존에는 신을 감동시켜 은총을 받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제사과정 자체가 우주의 운행에 대응되면서, 제사의 형식준수가 신앙의 주된 목적이 되었다. 제사를 주관하는 브라만들은 신의 지위에 비견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제사와 관련된 복잡한 지식을 독점하며 자신들의 지위를 강화시켜 나갔다. 이러한 제사만능주의 경향은 베다의 부속서이자 제사에 관한 신학적 해설을 담은 브라흐마나로 고조되었다. 브라만 중심주의는 카스트제도로 구체화되어 인도 사회에 뿌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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