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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

유대인 노예 생활과 아부심벨 신전, 출애굽과 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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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유대인은 고된 노예 생활로 아부심벨 신전을 완공했다.  하지만 그 또한 하느님의 예정이었다. 하느님께서는 마침내 출애굽의 기적을 이루시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십계명을 내렸다. 과연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은 어디까지일까? 십계명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유대인 노예 생활

유대인 역사 가운데 출애굽 사건은 유대 신앙의 가장 중요한 구심점이다. 출애굽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은 비로소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유대민족은 이집트 왕조가 바뀌면서 건설노예로 징발되어 수많은 건설현장에서 혹사당하고 있었다. 당시 람세스 2세는 힉소스의 수도 아리바스를 재건하고 야곱의 식구들이 번성한 비돔과 라암셋에 곡식창고를 건설했다. 또 몇몇 도시를 더 건설하여 가나안과 시리아 출정기지로 삼았다. 이러한 건설에 많은 유대인이 징집되어 혹사당했다. 람세스 2세는 유대인을 끊임없이 학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더 큰 무리가 되었다. 요즘 관광객들이 보는 이집트 신전 건축물의 대부분이 그때 유대인 건설노예에 의해 지어졌다. 유대인을 이용하여 여러 도시 건설은 물론 고대왕국의 피라미드 건설 이후 이집트 역사상 가장 많은 건축물이 건설되었다. 기원전 16세기에 시작된 이집트의 신왕국시대에는 고왕조의 피라미드를 대신한 신전이 건축의 주요 형태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카르나크와 룩소르의 거대한 신전들이었다. 그림이 새겨진 거대한 수많은 기둥은 이집트인의 놀라운 건축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아부심벨 신전

람세스대왕의 건축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낫세르 호수 연안의 아부심벨 대신전과 소신전이다. 피라미드를 본 관광객들은 아스완의 아부심벨 신전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란다. 대신전은 람세스 2세 자신을 위해 지은 건물이고, 소신전은 왕비를 위한 것이다. 소신전은 대신전에서 북으로 90미터 정도 떨어져 있으며, 입구에는 람세스 2세의 석상 4개와 왕비 네페르타리의 석상 2개가 세워져 있다. 벽면을 덮은 그림과 문자들은 카데시전투에 대한 기록으로 이집트군의 승리를 자랑스럽게 서술하고 있다. 람세스 2세는 카데시 원정을 화려한 승리로 묘사했지만 실제로는 시리아의 지배권을 빼앗기고 주변 국가가 히타이트의 영향력 하에 들어선다. 카데시도 여전히 히타이트 손에 남아 있었다. 아스완에서 남쪽으로 320킬로미터 떨어진 돌산을 깎아 만든 아부심벨 대신전의 정면은 파라오의 모습을 한 4개의 거상으로 만들어져 있다. 대신전은 정면 높이 32미터, 너비 38미터에 달하며, 신전의 길이도 63미터에 달한다. 각 조상은 높이가 22미터, 얼굴의 귀에서 귀까지의 거리가 4미터, 입술의 폭이 1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이다. 또한 아부심벨 신전 이외에도 카르나크 신전, 라메세움 등 거대한 건축물들을 건설했다. 특히 카르나크 신전은 이집트 역사상 숭배받아온 테베의 3신 아몬, 무트, 콘수의 신전이 있는 이집트 최대의 신전군이다. 따라서 고대 이집트 종교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다. 이집트 신전의 특징은 거대한 규모에 있다. 카르나크 신전은 길이가 약 4백 미터에 달하는 역사상 가장 넓은 면적의 종교 건축물이다. 유럽의 고딕성당 중 아무리 큰 것도 이 신전의 중앙홀에 쏙 들어갈 정도다. 신전 주위에 돌이 없어 모든 돌을 ‘아스완’에서 운반해 왔다. 이것들이 모두 유대인 건설노예가 지은 것이다. 오늘날 이 신전들을 바라보는 유대인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당시 건설노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웬만한 수공업 분야에는 모두 유대인 노예들이 혹사당했다. 유대인은 무자비한 압제와 혹독한 종살이에 지칠 대로 지쳐갔다. 노예로 전락한 유대인은 절망적인 강제노동의 상황에서 여호와에게 구원을 간구했다.

출애굽과 십계명

우여곡절 끝에 유대인들은 모세의 영도 아래 대탈출을 감행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엑소더스’다. 대규모 인원이라 이동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바뀐 파라오의 추격이 시작됐다. 하지만 모세가 하느님의 지시대로 지팡이를 내리치자 갈대 바다가 갈라졌다. 유대인들은 무사히 바다를 건너 이집트 병사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성서는 출애굽 과정에서 신이 보여준 여러 기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홍해 바닷물을 양쪽으로 갈라지게 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무사히 건너가게 한 다음 뒤따라 밀어닥친 이집트 군대에게는 물을 다시 합치게 하여 익사시킨 기적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시나이산에서 ‘40’ 일간의 기다림 끝에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 정통 유대교 신앙에서는 출애굽기에 기록된 대로 시나이산 정상에 하느님이 직접 ‘강림’하여 모든 인류에게 스스로를 드러냈다고 여긴다. 성서에 따르면 십계명 판은 하느님이 손수 만든 것이고, 판의 글자도 손수 새긴 것이다. 그런데 시나이산 밑에서는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들어간 40일 사이에 마침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산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산에 올라간 모세가 40일이 다 되도록 내려오지 않자 혼란과 의심에 빠졌다. 이들은 두렵고 당황한 나머지 자신들의 앞길을 인도해 줄 ‘금송아지’를 만들 생각을 한다. 그 무렵 소는 바알 신이라 하여 우가리트와 가나안의 범신 중 우두머리 신이었다.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온 신을 만들자 하여 아론으로 하여금 금송아지를 만들게 했다. 그때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이 손수 돌판에 쓴 증거판 두 개를 받아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이스라엘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춤추고 경배하는 우상숭배에 격노하여, 하느님께서 주신 증거판을 내던져 금송아지를 쳐부순다. 그리고 그 가루를 물에 타서 백성들로 하여금 마시게 했다. 우상숭배로 그날 죽임을 당한 사람이 3천 명이었다. 모세는 다시 시나이산에 올라가 40일간 하느님과 교통 했다. 하느님으로부터 또다시 십계명을 받았고 이스라엘을 위한 하느님의 율법을 받았다. 모세는 율법을 가르쳤다. 그 뒤 유대민족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다시 맺고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 이 계약은 아브라함이 맺은 계약을 새롭게 한 것으로, 이스라엘은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 맡기고 하느님에게만 예배드리기로 했다. 이후 4천 년 동안 ‘하느님과의 계약’ 사상만은 변함없이 이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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