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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

인도 힌두교의 집단의식과 카스트 제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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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의식들이 과거 힌두교에서는 비일비재했다. 비단 그것은 힌두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종교 이면에 숨어있는 잔인한 의식과 제도들은 종교를 향한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카스트제도

인도 힌두교의 집단의식

인도는 19세기까지 여성을 산 채로 화장하는 힌두교 의식, ‘사티’가 있었다. 죽은 남편을 화장할 때 살아 있는 아내를 함께 화장한 것이다. 17세기 중반, 프랑스의 여행가 겸 의사인 프랑수아 베르니에는 인도 여행 후 집필한 무굴 제국 여행기에서 사티에 대해 자세히 묘사했다. 그는 “인도에서 남편을 잃은 열두 살 남짓의 소녀가 사티에 의해 처참하게 불타 죽는 것을 보았다. 소녀는 타오르는 불길을 앞에서 떨고, 울고, 도망치려고 했지만 주위 사람들은 억지로 그녀의 손발을 묶고 불 속으로 밀어 넣었다”라고 기술한다. 인도에서는 1978년에 유아혼 억제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10살 정도의 소녀가 결혼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나이 든 부자와 결혼한 10대 소녀는 사티에 의해 화장되는 일이 많았다. 베르니에는 젊은 여성이 불타 죽는 모습도 목격했다. 불길 앞에서 울부짖으며 뒷걸음질 치는 여성을 구경꾼들이 몽둥이로 찔러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힌두교의 성전 마누법전은 ‘소녀, 젊은 여자, 늙은 여자를 막론하고 여자는 무엇이든 스스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어릴 때는 아버지를, 젊을 때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 여자는 결코 독립할 수 없다’라며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한다. 그래서 남편이 죽으면 아내를 그 소유물로서 함께 화장했고, 홀로 남은 아내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마누법전』에 사티를 인정하는 내용은 없다.

사티를 거부하는 여성은 비참한 일을 당했다. 배신자로 찍혀 힌두 사회에서 매장되었고 피차별 계급인 ‘아웃 카스트’, 즉 카스트 계층에 끼지 못한 ‘불가촉천민(만지면 안 되는 사람)’ 남자들의 노리갯감이 되었다. 사티 의식이 벌어지는 곳에는 불가촉천민 남자들이 몰려들어 젊은 여성이 불길에서 도망치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도망친 여자를 노렸다. 사회적으로 말살시킨 것이다. 사티 의식에는 그러한 목적으로 매번 불가촉천민 남자들이 불려 나왔다. 19세기에 인도를 통치한 영국은 너무 야만적이라는 이유로 사티 풍습을 금지했다. 20세기에는 거의 볼 수 없지만 아직도 일부 보수적인 힌두교도들 사이에서는 이 의식이 행해지고 있다. 힌두교 사회는 극단적인 남존여비 사상 때문에 여성이 사회적으로 보호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강간 사건이 빈번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불합리하게도 범죄를 저지른 남성이 아닌, 강간당한 여성을 처벌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힌두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종교란 야만적이고 편협한 광기로 가득할 때가 있다. 게다가 폐쇄적 공간에서 맹신하는 경우가 많아 끔찍하게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종교에 도사리는 집단 히스테리적인 측면이 불합리적인 일을 아무런 비판도 없이 정당화한다.

카스트 제도의 시작

인도에는 힌두교와 아울러 극단적 신분제를 강요하는 카스트제도가 있다. 그래서 앞에 언급한 아웃 카스트 계층이 지금도 존재한다. 카스트는 포르투갈어 ‘카스타(가문)’에서 온 말로, 15세기에 인도를 찾은 포르투갈인이 명명했다. ‘카스타’는 영어의 ‘class(계급)’에 해당한다. 인도의 힌두교도 중, 상층에 해당하는 브라만(승려, 사제 계층)과 크샤트리아(귀족 계층)는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하다. 그다음 바이샤(상인 계층)가 있고 다시 그 아래에 수드라(노예 계층)가 있다. 수드라는 전체의 6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수드라보다 더 아래에 있는 카스트제도권 바깥의 소외 계층이 아웃 카스트이며, 그들은 스스로를 달리트(억압받는 자)라고 말한다. 약 25%가 이 계층에 속한다. 이 같은 봉건적 신분제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인도 독립의 아버지 간디조차도 ‘출신에 따른 상식적인 분업’이라며 카스트제도를 존중했다. 다만 불가촉천민에 대해서는 동정을 표했다. 간디는 제3신분인 바이샤(상인 계층) 출신이다. 그의 집안은 상업으로 성공하여 부를 이루었다.

힌두교는 왜 이렇게 극단적인 신분제를 강요할까? 그리고 카스트제도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아리아인은 기원전 13세기에 인도를 정복한 후, 원주민 드라비다인을 지배하기 위해 ‘우리는 신이 선택한 종족’이라고 선전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고자 브라만교를 창시했다. 브라만교는 브라만(Brahman)이라는 우주의 근본적 실재를 숭상한다. 브라흐마는 브라만을 신격화한 것으로서, 창조신이다. 브라만교는 기원전 500년경 『베다』라는 성전에 그 사상을 정리했다. 우리가 불교 용어로 알고 있는 범아일여, 업, 윤회, 해탈 등의 용어는 원래 브라만교에서 설파한 이념이며, 훗날 불교가 브라만교의 우주관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아리아인을 신격화하기 위해 브라만교 교리에 바르나(종성)라는 신분제를 도입하여, 아리아인이 지배하는 사회질서를 형성했다. 이것이 카스트제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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