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아스터교가 유대교에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조로아스터교의 악마의 개념, 천당과 지옥, 심판이 유대교에 스며들었다. 이는 자연스러운 역사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사두개파는 조로아스터 교리를 거부했으나 바리새파는 수용하였다.
조로아스터교의 유대교에 미친 영향
조로아스터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등 다른 종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기원전 6세기 바빌론으로 끌려온 유대인 포로들은 당시 바빌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국교인 조로아스터교를 접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조로아스터교의 ‘유일신, 선과 악, 천사와 사탄, 최후의 심판, 구세주, 부활, 낙원과 지옥, 종말’ 등의 개념은 유대인들이 그간 몰랐거나 희미하게 느꼈던 것들을 명확하게 해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대교의 신관은 단일신이었다. 곧 야훼는 자기 백성을 선택한 신 가운데 가장 강한 신이었다. 그 무렵 모든 민족은 자기들의 수호신이 따로 있었다. 바빌론 유수기에 유대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유일신 개념이었다.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왕들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구약성서에도 나오는 것처럼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노예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준 페르시아 왕을 구원자로 묘사하고 있다. 더구나 다신교 사회에서 유일신에 대한 절대적 경배, 메시아의 출현에 대한 믿음, 도덕적·영적으로 엄격한 율법에 기초한 삶의 방식 등은 양 종교 간의 벽을 허물었다.”
조로아스터교와 유대교
조로아스터교에서 이야기하는 선과 악의 대결장이라는 이분법 교리로 인해 유대교에 천사에 대항하는 악마의 개념이 생겼고, 이에 따라 천당과 지옥, 심판이라는 개념이 자연스레 유대교에 스며들었다. 히브리 성서, 곧 구약성경에는 죽어서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다만 죽으면 우리 몸은 지하의 저승, 곧 ‘쉐올’이라는 중립적인 곳으로 간다고 적혀 있다.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죽음 이후에 살아생전의 행실에 따라 갈린다는 희미한 생각은 있었으나 명확하지는 않았다. 한편 유대인들은 조로아스터교의 메시아사상을 주목한다. 조로아스터교에는 3천 년마다 구세주가 등장해 세상을 구한다는 구세주 개념이 있다. 조로아스터가 죽은 후 3천 년이 지나면, 마지막 구세주가 지상에 강림해 모든 인간은 부활하며, 심판이 내려진 후 영생복락의 메시아 세상이 온다는 사상이었다. 기원전 586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기 전의 유대교와 기원전 539년 포로에서 풀려난 후의 유대교에 엄청난 변화가 있다. 포로 이전에는 ‘천사장, 사탄, 육체 부활, 심판, 천국, 지옥, 세상 종말’ 등의 개념이 없었는데, 포로 이후에 이런 개념이 쓰이거나 문헌에 등장한다. 선과 악, 천국과 지옥을 분명히 구분한 조로아스터교는 악마를 최초로 ‘사탄’, ‘샤이탄’이라고 불렀다 그뿐 아니라 기독교가 사용하는 천국(파라다이스)이라는 단어 자체도 고대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했다. 파라다이스는 고대 페르시아어로 ‘정원’을 의미하는 ‘파이리다에자 pairidaeza’로부터 유래되었다. 사후세계에 대해서도, 여호와에게 선택된 선지자까지도 죽으면 지하세계인 쉐올에 간다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의 관념체계는 바빌론 유수를 거치면서 서서히 변화되었다. 이후 유대인들은 쉐올(음부)에서 부활 때까지 무의식 상태로 있다가 여호와가 그들을 음부에서 구할 날이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이후 유대인들의 여호와 신앙은 어린 양을 바치는 동물희생제사 수준을 벗어나 신과의 영적교류를 중시하기 시작하면서 동물제사를 지내지 않는 유대인들이 늘어났다. 특히 유대교 혁신파인 에세네파와 나사렛 파는 성전에서의 동물제사를 거부했다. 예수는 당시 유대인 사이에서는 에세네파의 개혁적 랍비로 인식되었고 나사렛 파는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이었다. 이렇게 유대 사회에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이 스며든 것은 자연스러운 역사의 흐름이었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모세오경과 동물희생제사를 중요하게 여기던 보수 성향의 사제계급 사두개파는 유대인들 사이에 퍼져나가던 이런 새로운 종교관을 무시하며 거부했다. 반면에 바리새파는 이를 수용했다. 마태복음 22장 23절의 ‘부활 논쟁’에서 보듯, 사두개파는 영혼의 세계를 부인한 반면 바리새파는 인정했다. 그 뒤 신약시대에도 이러한 논쟁은 계속되었다. 바리새인(Pharisee)이란 말 자체가 ‘분리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분리된 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이 ‘분리주의자’란 뜻은 아니고, 사제계급 사두개파와 율법해석에서 의견을 달리한다는 말이다. 또 다른 주장은 바리새가 페르시아, 곧 ‘파르샤’의 히브리 발음으로 페르시아주의자들이라는 말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바리새인들이 주장한 ‘천사, 사후세계, 부활, 최후의 심판, 구세주’ 등의 교리는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를 흡수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유대교 사제계급인 사두개파는 모세율법만을 중요하게 여겨 ‘구세주, 부활, 천사, 악마’ 등은 물론 심지어 사후세계 개념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죽은 영혼은 그대로 지하세계 무덤(쉐올)에 거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바빌론 유수 이후 유대교에 조로아스터교의 새로운 구원관이 도입된다.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바리새인들이 유대교 주도세력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유대인들은 부활과 심판, 그리고 메시아사상을 그들에 맞게 변형시켜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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