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철학

통일 왕조와 불교, 힌두교 신앙의 세력화

반응형

인도의 통일 왕조는 불교를 이용하였다. 하지만 불교와 힌두교의 패권 다툼에서 힌두교의 세력은 더욱 커져갔다. 결국, 종교의 역사 또한 전쟁의 역사와 다를 바 없다. 인간의 탐욕이 전쟁을 낳고, 그 전쟁이 종교의 역사를 만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통일왕조

통일 왕조와 불교

인도 사회는 기원전 326년 대격변을 겪는다. 페르시아 왕국의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쳐들어온 것이다. 그리스인 알렉산드로스가 중동을 거쳐 인도까지 찾아왔으니, 원정의 규모가 매우 거대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는 인더스강을 넘어 인도 북서부로 침입했다. 거기서 다시 남하하려고 했으나, 그 이상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부하들의 반대로 부득이하게 철수한다. 당시 인도는 부족사회로 각지에 소왕국이 있었다. 외적의 위협에 노출된 소왕국은 군사력을 강화하여 약한 세력이나 부족들을 흡수했다. 인도의 부족사회는 점차 통합되었고 이윽고 새로운 통일 왕조가 탄생했다. 마우리아 왕조(기원전 4세기 성립), 쿠샨 왕조(1세기 성립), 굽타 왕조(4세기 성립), 바르다나 왕조(7세기 성립) 등의 통일 왕조가 흥망을 거듭했다. 그런데 이 통일 왕조들이 국교로 삼은 종교는 모두 불교였다. 왜 브라만교가 아닌 불교였을까? 다신교인 브라만교는 최고신 브라만을 중심으로 다양한 신이 있다. 그 신들은 인도 각지에서 신봉되었기 때문에 같은 종교 안에서도 여러 가지 주장이 있었고 신앙의 형태도 다양했다. 뿔뿔이 흩어진 상태로는 국가를 통일할 수 없었다. 반면 불교는 부처만 신봉하고 교리도 한 가지로 통일되어 있어 국가를 통일하는 데 편리했다. 또 브라만교 신관 세력은 통일 왕조의 중앙집권을 방해했다. 각 왕조는 신관을 비롯한 브라만교 보수파를 배제하기 위해서라도 불교가 필요했다. 불교는 살생을 엄격하게 금지하는데, 각 왕조는 왕조가 안정기에 들어선 후 동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 교리를 이용했다. 이러한 불교의 교리는 평화로운 상업 환경을 원하는 상인들에게 큰 환대를 받았다. 상인들은 풍부한 자금으로 왕조의 재정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각지의 사원 건설에 관여했다.

힌두교 신앙의 세력화

불교 전성시대에도 브라만교는 사라지지 않고 힌두교로 모습을 바꾸어 대중에게 보급되었다. 힌두교가 정한 일상 규범이 인도 농민들의 생활에 스며들었다. 반면에 불교는 대중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난해했다. 게다가 통일 왕조가 추진한 불교 정책은 강제성이 있어 대중의 반발을 샀다. 통일 왕조의 중앙집권을 저지하려는 지방 호족세력은 대중의 반발에 기름을 붓기 위해 불교를 공격하고 힌두교를 보호했다. 불교와 힌두교가 벌인 종교 패권 다툼의 실체는 통일 왕조와 지방 호족의 패권 싸움이었던 것이다. 불교를 신봉한 통일 왕조는 지방 호족세력을 제압하지 못했고, 그런 의미에서 왕권은 힘이 없었다. 힌두교 세력은 ‘바크티 운동’을 벌였다. 바크티는 ‘신애(信愛)’를 뜻한다. 바크티 전도자들은 번거로운 의식주의를 없애고 단순한 힌두 교리를 대중에게 설파하여 큰 효과를 거두었다. 호족들은 바크티 운동을 지원하며 대중을 끌어 모았다. 통일 왕조는 지방 호족에 대항하지 못하고 힌두교의 위세에 눌렸다. 왕조는 통일을 싫어하는 인도 부족사회의 독특한 체질을 바꾸지 못했다. 중국도 원래 부족사회(씨족사회)였지만 몽골 등 북방 이민족의 위협 때문에 국가를 통일해야 했다. 중국에서 한(漢) 왕조를 비롯한 강력한 통일 왕조가 계속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인도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공 후, 외적의 위협 없이 평화로운 시대가 계속되었다. 굳이 부족사회를 통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통일 왕조의 존재 이유도 희박했다. 4대 통일 왕조의 마지막인 바르다나 왕조는 유독 왕권이 약해서 50년도 되지 않아 무너졌다. 7세기에 통일 왕조 시대가 막을 내리자 보호자를 잃은 불교는 급격히 쇠퇴했다. 이후 힌두교의 다신교적 세계관 속에서 각지에 독립 지방정권이 난립했고 인도는 서서히 분열시대로 들어섰다. 16세기에 이슬람을 신봉하는 무굴 제국이 등장하면서 인도는 다시 통일됐다. 그러나 무굴 제국의 지배 하에서도 인도인 대다수는 이슬람화 되지 않고 힌두교 신앙을 유지했다.

반응형